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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마이웨이] 몽골 고비, 하늘로 날아간 호수

김홍성 | 기사입력 2024/07/07 [08:22]

[김홍성 마이웨이] 몽골 고비, 하늘로 날아간 호수

김홍성 | 입력 : 2024/07/07 [08:22]

▲ 김홍성 시인, 작가 [사진=리더스인덱스]  ©


[김홍성 마이웨이] 하늘로 날아간 호수

 

 

고비는 물이 귀합니다. 한여름의 고비는 불타오릅니다. 영상 40도를 훌쩍 넘는 한낮엔 어쩌다 내리는 비마저 땅에 이르기 전에 말려 버립니다. ‘유령 비라고 합니다. 지상에 무사히 도착한 빗방울들도 달구어진 땅을 담금질할 뿐입니다. 고비에서도 가장 뜨거운 바얀자끄의 점토들은 손으로 두드리면 쇳소리를 냅니다. 대지는 쩍쩍 소리를 내며 해독불가한 갑골문들로 갈라집니다.

 

고비의 연강우량은 100밀리에 불과합니다. 우기에 집중하여 내리는 비는 한바탕 쏟아붓고는 깔끔하게 사라집니다. 그러던 고비에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 늘었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2019년의 여름은 시작부터 비가 따라다녔습니다.

 

 

앞에는 햇빛이 눈부신데, 등 뒤로는 먹구름이 비를 내리퍼부으며 쫓아왔습니다. 차를 달리다가 돌아보면 화창하던 초원이 아련히 비에 지워져 갑니다.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비는 최신형 내비게이션을 달았는지, 길을 잃지 않고 끈덕지게 뒤를 밟아옵니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기 무섭게 비가 쏟아졌습니다. 오랜 가뭄에 시달리던 유목민들은 비를 몰고 온 여행자들을 감사하다!’며 반깁니다. 그 환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여행이 아니라 대민 봉사를 온 분위기였습니다.

 

 

유목민들은 몸속에 측후소를 하나씩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람의 방향을 보고 날씨를 감지합니다. 여름철에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은 맑은 날씨를 예고하고, 맞바람은 이튿날 내릴 비를 예고합니다. 앞뒤의 기준은 언제나 유목민 게르의 문이 기준입니다. 앞이라면 정남이고, 등 뒤는 정북입니다. 밤새 바람이 세차게 불면 이튿날은 맑습니다. 천둥과 뇌우가 요란하고, 주먹만 한 우박을 쏟는 비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늘이 흐리며 바람도 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온종일 이어집니다.

 

 

비는 초원의 기름입니다. ‘기름지다라는 뜻의 터송이란 단어는 지명에도 쓰입니다. 항가이의 풍성한 초지와 이리저리 구부러져 흐르는 강을 품고 있는 터송 쳉헬 마을이 있습니다. 비는 초원의 풀을 기름지게 하고, 가축들을 살찌웁니다. 유목민에게 비는 축복입니다.

 

 

고비에서 비를 만나면 3년 동안 재수가 좋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리 재수가 좋더라도 여행자에게 비는 반갑지 않지요. 천상의 풍광도 비가 오면 지옥으로 변합니다. 기온은 급강하고, 차는 수렁에 빠지고, 하늘은 별들을 숨깁니다. 여름 한 철에 내리는 고비의 비는 여행자들과 겹칩니다. 불타는 사막과 쏟아지는 별들을 찾아온 여행자들은 비에 젖은 게르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사막에서 듣는 빗소리는 촉각적이지요. 소리보다 먼저 피부에 와 닿습니다. 게르는 전혀 비를 대비하지 않은 집입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지요. 텡그리(하늘 신)가 드나드는 천창은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덮지 않습니다. 덮는다 해도 양털을 눌러 만든 모전(毛氈)의 덮개가 비를 막지는 못합니다. 온종일 내리는 비는 양털 속으로 스며 게르 안으로 툭툭 떨어집니다. 정주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게르 안으로 최초의 빗방울이 떨어짐과 동시에 비명을 지릅니다.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간처럼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유목민들은 그런 나그네들의 소동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들은 한 방울의 비도 허투루 떠나보내지 않습니다. 그릇마다 채워서, 그 물로 몸을 씻고, 빨래를 하고, 음식을 끓입니다. 꼭지만 돌리면 수돗물이 쏟아지는 정주민의 비와, 유목민의 비는 정신적 염기서열이 전혀 다릅니다.

 

비에 젖은 게르는 후줄근해지고 양 냄새가 진동합니다. 여행자들은 다시 비명을 지릅니다. 아무래도 양을 길렀던 우리인 듯하다며, 사람이 그 안에서 지낼 수 없다고 항의합니다. 양의 털가죽으로 지은 게르에서 꽃냄새가 날 수는 없습니다. 게르를 통째 세탁할 수도 없는 유목민은 게르 바닥에 고인 빗물만 연신 닦아낼 뿐입니다. 소동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게르는 보송보송 마르고, 냄새는 사라집니다. 여행자들은 고비가 펼치는 마법에 울고 웃다가 시나브로 양털 냄새에 익숙해집니다.

 

 

고비의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풀들도 처음엔 그리 아우성쳤을 것입니다. 풀들에게 비는 생존의 모든 것이지요. 갈증으로 불타던 풀들은 빗소리만 들려도 빛깔을 바꿉니다. 과장되게 말한다면, 눈앞에서 산과 초원의 빛이 바뀌는 걸 보게 됩니다. 웅크리고 있던 풀들은 자동우산처럼 일제히 꽃을 펼칩니다. 허브들로 덮인 고비 알타이의 바위산들은 빗방울 소리와 동시에 연록으로 바뀝니다.

 

 

기다린다고 비가 늘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여름마다 볼강의 대초원을 뒤덮던 야생 부추들이 꽃도 피우지 못한 채 가을을 맞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비의 풀들은 다년생이 많습니다. 이번 여름에 비를 만나지 못하면 다음 여름을 기다리며 꽃을 숨겨 둡니다.

어느 해인가 지독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Gan)’이라 불리는 가뭄은 겨울부터 시작됩니다. 얼어붙은 땅에 뿌리박은 풀들을 덮어주고, 수분을 제공하는 눈이 내리지 않으면 봄이 되어도 초원은 불모지로 변합니다.

 

 

돈뜨고비의 첫인상은 붉음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를 달리는 동안 반구의 대평원은 풀 한 포기 찾을 수 없는 불모지였지요. 풀이 없으니, 가축도 없고, 그를 기르는 유목민의 게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란 말의 의미를 실감하는 순간이었지요. 아무것도 없고,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붉은 사선이 그어진 지평은 차의 요동마저 소멸시켰습니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이 막막할 뿐입니다. 우주를 달리는 은하철도999’ 은하철도 999는 이따금 스치는 별이라도 보이겠지요? 붉은색이 그리 쓸쓸하고 황량한 색감인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다시 그곳을 찾았습니다. 아무리 가도 붉은 불모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길을 잘못 든 줄 알고 운전사에게 사방 300km의 붉은 황야로 가자고 졸랐습니다. 운전사는 같은 길이라고 했지만, 그곳은 지난해 보았던 불모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야 그 붉은 불모지가 야생 부추들로 뒤덮였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모든 것이 말라 죽었다고 여긴 불모지가 새벽부터 황혼까지 부추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부추꽃은 사라지고, 보랏빛 쑥부쟁이가 아득하게 뒤덮였습니다. 이 모든 게 비의 마술입니다.

 

비는 기억도 바꿉니다. 지명이 익숙하지 않던 초기에 이따금 나타나는 호수를 이정표로 삼아 길을 기억해 두었습니다.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요. 고비의 호수는 물이 아니라 바람이 고인 둠벙이었습니다. 고비의 표피는 점토로 덮여 있습니다. 비는 나노 단위의 미세한 점토 속으로 스미지 못한 채 낮은 곳으로 모여 호수를 이룹니다. 비가 만든 호수들은 얼마 가지 않아 하늘로 날아갑니다. 중앙아시아에는 떠도는 호수도 있었습니다. 서기 300년경 누란을 떠나 남쪽으로 떠난 롭 호수(Lop nur)1934년에 누란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스벤 헤딘은 이를 방황하는 호수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고비의 호수는 바람에 날아다닙니다.

비를 타고 내려왔다가 바람 수레에 실려 하늘로 올라갑니다. 바람이 만든 하늘 호수는 그리스 신화의 서사와 만납니다. 아프로디테가 사랑한 아도니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아프로디테는 죽어가는 아도니스를 슬퍼하며 꽃으로 환생하게 했습니다. 아도니스가 죽어서 피어난 아네모네꽃은 그리스어로 바람이란 뜻입니다. 바람 속에 피었다가 바람 불면 지는 아네모네처럼 고비의 호수는 바람 속에 오고 갑니다.

 

 

호수가 눈에 띄면 걸음을 멈춥니다. 말라가는 호수의 언저리에는 누군가 벗어 놓은 진흙 신들이 남아 있습니다. 떼를 지어 물을 찾아온 양과 염소, 호수에 들어가 구수회의를 하는 말들, 가까운 마을에서 물놀이를 온 아이들의 목소리들이 남겨놓은 발자국들입니다. 화석처럼 굳은 족적 속에 손가락을 넣으면, 어느 게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바람의 음성이 만져집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시백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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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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