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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마이웨이] 그저께 보낸 메일/ 김광규

김홍성 | 기사입력 2023/06/11 [07:59]

[김홍성 마이웨이] 그저께 보낸 메일/ 김광규

김홍성 | 입력 : 2023/06/11 [07:59]

▲ 김홍성 시인, 작가 [사진=리더스인덱스]  ©


[김홍성 마이웨이] '그저께 보낸 메일'  김광규시집을 읽고 나서 옮겨 적다

 

마가목주 / 김광규

 

밋밋한 오르막길에 마가목* 한 그루

눈에 띄었다

주전골 내려오며 우리는 마가목 열매로 담근

술 이야기를 했었지

설악산 쏘다니다 보면

감자전 부치는 산골 주막에 들러 한번

맛볼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럴 기회도 오기 전에 그 친구

췌장암으로 세상을 등졌고

나는 이제 산을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여생의 내리막길 타박타박 걸어가면서 아직도

마셔보지 못한 마가목주

그저 이름만 기억하고 있을 뿐

*한자로는 馬牙木이라고 씀.

 

남몰래 흘리는 눈물 / 김광규

 

수술을 며칠 앞두고 환자를

격려하려 찾아온 중학교 때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먹고 헤어졌다

안국역에서 3호선 전철을 타고 떠나가는

늙은 친구들 배웅하고 돌아서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아

슬퍼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혹시 앞서가게 되더라도 제각기

살아남아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에 시달리며

지저분한 잔반殘飯을 치워야 할 그들이

문득 불쌍해져서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었다

 

바로 그런 사람 / 김광규

 

맞아

방금 떠올랐던 생각

귓전을 스쳐 간 소리

혀끝에 감돌던 한 마디

그것이 과연 무엇이던가

그래 그것이 맞아

틀림없어

참으로 기막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을 뭐라고 해야 할지

달리 바꾸어 말할 수도 없고

글로 옮겨 쓸 수도 없는

바로 그것을

어떻게 되살려 낼까

궁리하다가 평생을 보낸 사람.

 

발췌_

김광규 시집_그저께 보낸 메일_문학과지성 시인선 580_2023

 

▲ [사진=김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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