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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마이웨이] 비 오는 날 옥수수 굽는 냄새:리더스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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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마이웨이] 비 오는 날 옥수수 굽는 냄새

김홍성 | 기사입력 2024/04/21 [08:00]

[김홍성 마이웨이] 비 오는 날 옥수수 굽는 냄새

김홍성 | 입력 : 2024/04/21 [08:00]

▲ 김홍성 시인, 작가 [사진=리더스인덱스]  ©


[김홍성 마이웨이] 비 오는 날 옥수수 굽는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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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서 사는 재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시장 구경이다. 재래시장 중에서 제일 큰 시장은 시내 중심에 있는 어션이지만 구태여 어션까지 갈 필요도 없다. 동네마다 있는 힌두 사원의 공터에는 날마다 자그만 시장이 열린다.

 

 

부인네들이 자루나 보따리를 이고 와서 길가에 펼쳐 놓는 물건들은 대부분 농산물이다. , 감자, 옥수수, 양파, 양배추, , , 호박, 고소, 고추, 가지, 호박잎, 열무 같은 것들인데 철 따라 조금씩 바뀐다. 30 루피(5백원) 가지고 나가면 대여섯 식구 두 끼 먹을 국이며 찬거리 사기에 충분하다. 

 

양력 6월 초순에 시작되는 우기에는 장 서는 길가 모퉁이에 옥수수 굽는 행상도 등장한다. 어느 해 우기였던가, 수북이 쌓인 옥수수 껍질 위에 두어 살 된 딸을 푹신히 앉혀 놓고 숯이 된 장작불을 후후 불어가며 옥수수를 굽는 젊은 부인이 있었다. 매운 연기 때문에 부인의 눈은 빨갛고 가끔 눈물도 맺혔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칼에는 하얀 재가 날아 앉았다.

 

우기에 접어든 카트만두에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왔다. 비 오는 날에도 그녀는 옥수수를 구웠다. 어린 딸은 여전히 수북한 옥수수 껍질 위에 앉혀 놓고서 비 안 올 때보다 매운 연기가 더 많이 나는 숯불을 후후 불었다.

비 오는 날은 옥수수 굽는 냄새가 평소보다 더 구수하게 코를 자극하므로 옥수수가 잘 팔렸다. 그래서 그녀는 비 오는 날일수록 더 열심히 숯불을 후후 불었나 보았다. 

 

어느 비 오는 날 처음으로 그녀가 구운 옥수수를 샀다. 두 개에 5 루피(75 )였다. 5 루피는 카트만두의 시내버스 요금이다. 그리고 제일 좋은 네팔 담배 두 개비 값이다.

10 루피를 내고 다섯 개를 달라고 해 보았다. 그녀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하나 더 달라고 보챘다. 그랬더니 정말로 하나 더 주는 것이었다. 다른 것보다 조금 작고, 까맣게 탄 데가 많은 것이었다. 그래도 그 옥수수가 제일 고소했다.

 

얼마 후, 산책을 나갔다가 비가 올 듯 하늘이 컴컴해져서 서둘러 집으로 오는 길이었는데, 그녀가 내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옥수수를 담았을 커다란 자루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땔나무 한 묶음을 들고서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위태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너머스떼'하고 인사를 하자 그녀도 '너머스떼'하며 웃어주었다. 조금 수줍은 표정이기는 했지만 분명하게 웃었다. 모진 가난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그녀가 몹시 부러웠다. (2005)

 

* 옥수수 굽는 사진을 못 찾아서 어션 바잘의 사진을 올립니다. 😅

 

▲ [사진=김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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