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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마이웨이] 샘물 떠먹고 살고 싶다:리더스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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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마이웨이] 샘물 떠먹고 살고 싶다

김홍성 | 기사입력 2024/01/07 [07:50]

[김홍성 마이웨이] 샘물 떠먹고 살고 싶다

김홍성 | 입력 : 2024/01/07 [07:50]

▲ 김홍성 시인, 작가 [사진=리더스인덱스]  ©


[김홍성 마이웨이] 춘천에서 삼 년 넘게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꿈꾸었던 것 중의 하나가 어떤 산기슭에서 옹달샘 물을 떠먹으면서 사는 거였다.

 

그리고 텃밭에 푸성귀를 가꾸는 거였다. 푸성귀 중에서도 대파를 꼭 심어보고 싶었다. 봄에 봉의산 언저리를 걷다가 본 허름한 집 텃밭에 핀 대파 꽃이 얼마나 소담스럽던지 사진도 많이 찍었다. 환한 햇살이 퍼지는 텃밭에 자라는 몇 무더기의 대파 꼭대기에 하얗게 핀 동그란 꽃 대궁은 모든 채소 중에서 대파가 가장 높은 벼슬을 하는 채소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내가 본 대파 꽃은 대체로 가난한 집 텃밭만 골라서 자라고 있었으니 그 벼슬은 밭고랑을 파서 벌레를 잡아먹는 닭의 그 붉은 벼슬만도 못할 것이다.

 

볕 잘 드는 앞마당 텃밭에 대파 꽃이 피어 있는 그 허름한 집들은 대체로 재개발 공고 판이 서 있는 동네였다. 그 동네에는 빈 집도 많았다. 그 중 어느 한 집에는 우물도 있었다. 한 때는 어지간한 규모의 살림을 살았을 법한 집에는 작은 우물도 있었다. 그 우물에는 헌 신짝이나 몽당 빗자루나 살만 남은 우산대 같은 게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 우물가의 축축한 땅에는 군데군데 머위가 자라고 있었다. 살던 사람은 다 떠난 집에서 저희들끼리 오손도손 자라는 머위들이 기특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난 해 가을, 춘천을 떠나 이곳 울음산 기슭에 돌아와 월동 준비를 하던 중에 어머니가 다녀 가면서 불타서 없어진 옛 집터 위에 샘이 있으니 찾아보라고 했다. 그 샘은 사철 일정한 양의 물이 나오며 겨울에도 얼지 않을뿐더러 물맛도 좋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그런 샘이 있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났다. 바가지 샘이라고 해서 바가지 하나 깔아 놓고 떠먹는 샘이 있기는 있었다.

 

월동 중에 수도가 얼면 비상용 식수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에 어느 날 작정을 하고 찾아 나섰다. 어렵지 않게 그 샘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 머위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위들이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곳에 한 뼘 쯤 되는 플라스틱 파이프가 꽃혀 있었고 거기서 물이 쨀쨀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거기에 연결해서 썼을 법한 고무호스도 그 근처의 잡풀 속에 죽은 뱀처럼 길게 엎드려 있었다. 나는 아주 간단하게 비상용 식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물맛? 처음에는 고무 냄새가 나서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내가 잡지사 기자 노릇하면서 이 나라 방방곡곡 다니면서 마셔본 어떤 샘물보다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거처하게 된 집에서 좀 먼 것이 흠이었다. 그리고 내 거처에도 그 못지않게 좋은 물이 수도로 나오고 있었다. 마당 밑에 흐르는 지하수를 수중 모터로 퍼 올려 산비탈에 올려놓은 탱크에 저장했다가 수도를 통해서 내 거처의 개수대와 샤워기와 세탁기로 직접 들어오는 물이 있으니 일부러 그 물을 뜨러 다니기는 좀 귀찮았다.

 

그러나 수도물은 첫 추위에 얼어 버렸다. 압력솥의 스팀을 이용하여 한두 번 뚫어 주는데 성공하기는 했으나 금방 다시 얼었다. 수도 물을 얼리지 않으려면 수도꼭지를 틀어서 쨀쨀쨀 흐르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하여 온 종일 쨀쨀쨀 흐르도록 해 놓은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새벽, 난로에 불을 때다가 돌아보니 수도꼭지의 물이 그쳤다. 확인해 보니 어느새 쩍 얼어붙은 것이었다. 영하 20 도 이하에서는 수도꼭지를 더 풀어서 물이 좀 더 세차게, --- 소리가 나도록 해 놔야 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지하수를 퍼 올리는 고성능 수중 모터가 잡아먹을 전기 요금이 아까웠던 것이다. 

 

결국 샘물 신세를 지게 되었다. 플라스틱 물통에 물을 받아서 외발 수레로 부엌에 옮겨다가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빨래는 모아서 배낭에 담아 지고 내려가 산 밑에 세워둔 차에 싣고 본가에 가서 해 왔다. 빨래가 본가의 세탁기에서 도는 중에 대중탕에 가서 목욕도 했다. 그러던 중에 아내는 설거지 감을 양동이에 담아 들고 샘으로 가기 시작했다. 내가 눈길을 헤치며 힘들게 운반해 주는 샘물로 설거지를 하자니 마음이 안 편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설거지를 샘에 가서 시작한 지가 어느 새 한 달이 넘었는데 너무 추운 날에는 불평 아닌 불평도 하는 것이었다. 샘물 떠먹고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이 꼴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무척 고무적인 일이 일어났다. 고무호스에서 쨀쨀쨀 나오는 샘물로 설거지를 할라치면 손은 좀 시려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바람은 차도 햇살이 따사로운 날에는 샘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을 만지고 있는 자체에서 무슨 영기를 받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봄이 너무 빨리 와서 부산하게 살게 될 것이 두렵다는 말도 했다.

 

, 이런! 이런! 이런 공감의 순간이 그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던 나는 몹시 기뻤다. 아니 흥분해서 말을 많이 했다. 이 샘물은 이 산의 영기가 어려 있는 물이며, 이렇게 영기 어린 샘물을 떠먹고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다 내 덕이다, 우리는 평생 샘물 떠먹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등등 둥둥 뜨는 말을 너무 많이 뱉었던 것이다. 그런 말 보다는 차라리 역시 당신은 요즘 여자들과는 달라, 보통 여자가 아니야, 멋져 부러~ 이런 말을 하는 게 옳았을 것 같다.

 

▲ [사진=김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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