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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호 앵글세상] 사랑한다는 말도 해보고 싶다.

조문호 | 기사입력 2024/07/14 [07:08]

[조문호 앵글세상] 사랑한다는 말도 해보고 싶다.

조문호 | 입력 : 2024/07/14 [07:08]

▲ 조문호 사진작가 [사진=리더스인덱스]  ©


[조문호 앵글세상] 사랑한다는 말도 해보고 싶다.

 

, 팔십이 가깝도록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쪽팔리기도 하지만, 그 말의 깊은 무게에 차마 뱉을 수가 없었다. 정 동지 와도 20여 년을 장터로 떠돌아다니며 동고동락 했지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색은 안 하지만 처음엔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을까하며 서운했겠으나 흐르는 세월에 무덤덤해진 것 같았다. 사랑이란 말이 남녀의 애정만이 아니라 가족에서 부터 친구에 이르기까지 아니, 그보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포괄적 가치를 갖지만 쉽게 말하다 보니 사랑의 가치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대개 남녀 간의 사랑부터 떠올리다 보니 치정까지 연상되어 때로는 천하게 들리기도 한다. 죽을 때가 되어 철이 들었거나 아니면 노망이 들었는지, 이제라도 사랑했다는 말을 한번 해 보고 싶다. 비록 정동지 만이 아니라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지 지난 토요일은 정동지와 고흥 봉래오일장에 갔다. 비 오는 날의 봉래장이야 보나마나지만, 그는 현재의 봉래장 안위를 확인하고 싶었고 나는 정동지와의 장터 여행에 목적이 있으니 피차 망설임은 없었다. 아산 작업실에서 하루 지낸 후 새벽 일찍 출발했는데 가는 내내 비가 쏟아졌다. 정동지 따라 숱하게 장터를 떠돌아다녔지만 장은 갈 때마다 설레임의 여행이다.

 

하루 평균 다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을 차에서 같이 지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겠나? 귀가 어두워 다른 사람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정동지와는 소통이 무난하다. 왼쪽 귀는 완전히 막혔지만 운전 옆 좌석 오른쪽 귀는 다행히 바늘구멍 같은 게 남은데다, 정동지 이야기는 감으로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

 

어쩌면 많은 대화에서 정이 깊어졌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가 장에가자전시 발문에 그들의 금슬의 반은 5일장을 돌면서 형성된 동료 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고 적었겠나? 나누는 이야기야 사는 일에서 사진에 이르기까지 왔다 갔다 하지만, 웃을 수 있는 시시껄렁한 잡담도 자주 하는 편이다.

 

나는 광대 기질이 있는지 내가 한 말에 상대가 웃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양반보다 쌍놈 말이 더 자유롭듯이 상대가 웃을 수 있는 이야기는 유식한 이야기보다 천할수록 재미있다. 대체로 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모든 일을 성과 관련 지은 기가 막힌 말장난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나? 정동지는 입버릇처럼 제발 아는 척하지 말라면서도 입이 찢어지도록 웃는다. 상대의 즐거운 모습에 행복감을 느끼니 대리만족일까? 그런 짓궂은 말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지껄이니 더 가관인 것이다.

 

 

그날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라 긴장되어 침묵의 시간도 흘렀다. 혼자 이런저런 지난 일을 떠 올리며 갔는데, 행복했던 시간들이 와이퍼에 갈라지는 빗물처럼 흘러 내렸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고 죽어도 여한은 없었다. 정동지는 안전벨트를 메라지만 죽어도 메이기는 싫었다. ‘안전하게 운전하려면 몸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 같잖은 핑계를 또 댔다. 비가 덜 오면 휴게소에서 주변 풍경도 구경하며 가다 보니, 고흥 봉래장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네 시간을 예상했으나 30분이 더 걸린 것이다.

 

그런데 장터에 손님이라고는 개미 한 마리 없고 장돌뱅이 아줌마 한 분이 트럭에 짐을 싸고 있었다. 정동지가 아줌마를 붙잡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는데, 요즘 봉래장은 문 닫기 직전이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트럭을 몰고 다녀 사람 많은 다른 장에 갈 수도 있지만, 단골 얼굴이 떠올라 사람 없는 봉래장도 빠질 수가 없단다. 돈보다 사람 관계를 더 중히 여기는 이런 장꾼도 만나기 힘든 세상이다.

 

고흥 봉래까지 온 김에 지척에 있는 '우주나로센터'도 가보았다. 그곳 또한 아무도 없는 적막강산이지만 빗속에서 우주여행을 했다. 우리 사는 곳이 최고지 꿈의 우주도 별것 없더라. 배가 고팠으나 식당이 보이지 않아 보성장으로 이동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정동지가 다시 들리고 싶은 장이었다. 보성이 가까워오니 내리던 비도 주춤했다. ”사모님! 드디어 보지의 성에 입성하였나이다라는 멘트로 또 한 번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녹차밭으로 소문난 보성이라 그런지 간판이 녹차골보성향토시장으로 바뀌었다. 요즘 지자체마다 너도나도 장터 이름을 바꾸는데, 헷갈리기만 하지 정겹지가 않다. 특산물로는 보성 웅치면에서 나오는 올벼쌀을 빼놓을 수 없다. 오는 길에 담양장도 들렸다. 30여년 전 새벽 일찍 담양죽물시장에 촬영 간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우연히 대구 김일창교수를 만났다.

 

한때는 담양죽물시장이 김일창교수 야외 스튜디오란 말도 나왔는데, 그날은 학생들과 동행한 것 같았다. 장터에는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진 찍다 갑자기 필름이 돌아가지 않는 문제가 생겼는데, 암백이 없어 여관 이불장에 들어가 찍힌 필름을 꺼내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당시는 천변에 대바구니와 복조리 같은 죽제품 더미를 쌓아 놓은데다,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지 장관이었다. 소쿠리를 사람이 안 보일 정도로 잔뜩 짊어지고 옮기는 모습 등 볼거리가 많았다. 장터국밥을 안주로 보해 소주 한 잔 걸치는 재미도 솔솔 했는데, 언제부터 인지 죽물시장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뒤 정동지 따라 담양장에 들려 보았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마치 백화점 같은 어마어마한 장터 건물이 들어섰고 그 주변 도로는 관광 거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세상에 바뀌지 않는 것이 있겠냐마는 예전 담양장의 포근한 장터 정서가 그리웠다. 세월이 참 무정타! 어찌 흔적도 없이 씨를 말릴 수 있나? 최두석의 시 담양장이나 읽으며 향수를 달랜다.

 

죽장의 김삿갓은 죽고 / 참빗으로 이 잡던 시절도 가고 / 대나무 전성 시절에 (중략) , 요즘도 장날이면 / 허리 굽은 어머니 / 플라스틱에 밀려 시세도 없는 대바구니 옆에 쭈구려 앉아 / 멀거니 팔리기를 기다리는 / 담양장

 

사랑한다는 말도 해보고 싶다.

https://blog.naver.com/josun7662/223503855674

 

▲ [사진=조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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