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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노 수필산책] 마음속의 아이를 떠나보내며

이명노 | 기사입력 2024/09/01 [07:19]

[이경노 수필산책] 마음속의 아이를 떠나보내며

이명노 | 입력 : 2024/09/01 [07:19]

[이경노 수필산책] 마음속의 아이를 떠나보내며 / 이경노

 

 

뒤를 돌아보았다. 두 번 씩이나. 그것은 아들 녀석이 부모의 품을 떠나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우뚝 서기 전, 아이로서의 마지막 눈빛이었다.

10여 년 전에 할머니 집에서 자고 싶다고, 설레는 얼굴로 엄마아빠와 떨어지던 그 눈빛에는, 단지 하룻밤이지만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부모와 떨어지는 아쉬움이 함께 했으리라. 어쩌면 아들에게서 그 어린 시절의 눈빛을 나는 본 것일지 모른다.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그래야만 저도 마음을 다지고 군 생활을 잘 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아들과 포옹하며 등을 두들겨 줄 때 그 다짐이 무너질 뻔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억지로 삼키고 보내주었다. 다른 입대 병들에 섞이어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는 눈빛은, 어렸을 적에 처음으로 떨어지던 그 눈빛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등교할 때, 교문에서 헤어져 가방을 메고 혼자서 교정으로 들어가다가 멈춰서, 뒤를 돌아보던 그 눈빛을 떠오르게 했다.

 

훈련소에 아들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을 지나는 맑은 풍경들이 내 가슴 속에서는 이미 젖어들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먼저 아들 방으로 향했다. 방을 둘러보니 아들의 채취가 느껴졌다. 아들의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그 동안 못해 준 것만 생각나서 괜스레 아들의 책상, 걸려 있는 옷들과 물건들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이제 떠나보내야 할 아이로서의 아들을 느껴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리곤 피곤함에도 바로 주변의 산에 정상까지 쉬지 않고 올랐다. 무더운 여름을 땀으로 적실 아들을 생각하니, 집에서 편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다.

 

날이 지나며 여름의 한가운데를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 달리고 있을 아들이 더욱더 궁금해졌다. 중학교 3년간 럭비선수로 각종 대회를 뛰었던 아이지만, 부모로서 안쓰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더위를 먹지나 않았는지, 훈련이 너무 고되지는 않은지, 안전하게 훈련받고 있는지···.

아들의 방문 앞을 지날 때마다 가끔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아들은 없다. 어린 시절의 아들은 없다. 멀리 훈련소에서 병역의 의무를 지고 힘든 훈련을 이겨가며 어엿한 성인이 돼가고 있는 늠름한 아들의 모습을 애써 떠올렸다.

 

훈련 3주째 육군훈련소 홈페이지에 훈련병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목소리는 두어 번 들었지만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을 검색해보았다. 소대장훈련병이 되어 군복을 갖춰 입고 어깨에 견장을 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아이가 아니었다. 부모의 품을 떠나 혼자서도 잘 해내고 있는, 자신감과 용기가 배어있는 어엿한 청년의 얼굴이었다. 내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감돌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잘 해준 것 없이 키운 아이가 꿋꿋하게 잘 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한 마음에 사진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모든 인간은 어미로부터 태어나 어미를 의지하고 어미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 그리고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길러지면 독립한다. 또 어미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에 담은 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잘 키웠건 그렇지 못했든 어미는 자식이 독립할 때가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는, 자식이 잘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나이 먹고 죽어간다. 그것으로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사진 속의 아들은 늠름한 청년의 눈빛이다. 그 어릴 적, 아니 몇 주 전에 보았던 아이 같던 눈빛은 용기와 자신감으로 가득 찬 청년의 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오늘 밤, 늠름한 모습의 아들 사진을 가슴에 안고, 아들의 어린 시절 함께했던 추억의 꿈을 꿔야겠다. 어엿하게 장성한 아들의 성장을 축하하면서···.

 

▲ 이경노 수필가 [사진=리더스인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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