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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마이웨이] 나는 모닝 페이지를 또 쓰게 되리라

김홍성 | 기사입력 2024/09/01 [07:23]

[김홍성 마이웨이] 나는 모닝 페이지를 또 쓰게 되리라

김홍성 | 입력 : 2024/09/01 [07:23]

▲ 김홍성 시인, 작가 [사진=리더스인덱스]  ©


[김홍성 마이웨이] 나는 모닝 페이지를 또 쓰게 되리라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글쓰기를 시작했던 시절이 있다. 지금처럼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아니라 노트를 펼쳐 놓고 볼펜이나 연필로 썼다.

세 페이지 씩 매일 썼다. 제목이나 주제를 정해 놓고 쓰는 게 아니었다. 그냥 생각이 나는 대로, 그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볼펜을 움직이며 따라가는 글쓰기였다.

 

 

시나리오 작가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그것을 모닝 페이지라고 불렀다. 나는 그 책을 읽고서 모닝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주로 새벽에, 식구들이 아직 깨어나기 전에 썼다.

어떤 때는 30분이 걸리지만 어떤 때는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생각나는 그대로 옮기면 되는 일이지만 생각이 제자리걸음이나 맴돌이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때도 그대로 옮기다 보면 가닥을 잡아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쉽지는 않다. 나는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는가 라든지, 이렇게 써서 언제 밥벌이를 하게 되느냐 라든지, 일찌감치 때려 치고 다른 길을 알아 봐야 하겠다든지 하는 자탄의 소리를 따라가다가 스스로 지쳐서 펜을 든 채로 그런 부정적인 상념 속에 푹 젖어버리기 때문이다.

 

 

줄리아 카메론이 반드시 세 페이지를 쓰라고 요구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내 경우를 보자면, 생각과 문장이 함께 자연스럽게 흐르다 멈추고는 붓방아를 찧으며 글쓰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는 일이 보통 한 페이지를 채우기도 전에 나타났다.

다음 페이지에서도 또 그랬다. 마지막 세 번 째 페이지를 채울 때는 잡다한 근심 걱정에 할 일 못한 일 등등도 나열하면서 채워야 했다.

 

 

전 날 일찍 자면(물론 술도 안 마시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날 수 있으므로 모닝 페이지를 제법 후련하게 마칠 수 있었다. 그러면 마치 모닝 똥에 성공한 아침처럼 산뜻했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든지, 빈둥대다가 잠을 못 이루었다든지 하여 늦게 일어난 날은 빨리 모닝 페이지를 마쳐야 하므로 마음이 급해서 그랬는지 모닝 페이지 쓰기가 아주 어려웠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줄리아 카메론은 모닝 페이지를 최소한 석 달은 꾸준히 쓰기를 권했던 것 같다. 비싼 보약을 먹을 때는 가급적 술을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되는 데 그런 기간은 백날이 아니라 길면 길수록 좋지 않겠는가.

 

 

이미 쓴 페이지는 쓰는 도중에는 물론이고 쓰고 나서도 최소한 석 달 동안은 절대로 읽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글쓰기를 스스로 폄하하고 모멸하여 스스로 글쓰기의 의욕을 꺾어버리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일 것이다.

 

한 달 전, <리얼리스트의 아침>에 월요일마다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모닝 페이지'를 떠올렸다. 새벽에 눈을 뜨면 모닝 페이지를 썼던 여러 해 전 그 시절도 떠올랐다. 그 시절의 모닝 페이지 노트들을 꺼내어 몇 권은 찬찬히 읽어보기도 했다.

 

지금 다시 읽어도 눈물이 맺히는 그 시절에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나는 분노와 회한을 잠재우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왜냐하면 간신히 잠재운 분노는 페이지마다 다시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심한 녀석인 나 자신에 대한 분노, 나를 섭섭하게 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죽음에 대한 분노. 나는 분노를 비애로 바꾸어서 스스로 어루만지기도 했다.

 

 

어떤 때는 분노와 비애를 떠나 담담하게 생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기도 했다. 몇몇 페이지는 제법 반짝이는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몇몇 페이지는 소설 문장이었으며 어떤 페이지는 산문시처럼 여겨졌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안 받는 시간에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쳐 놓고 생각의 흐름을 펜으로 쫓는 일은 명상의 일종이었다. 쓰기보다 읽기를 더 많이 한 결과 눈만 높아져서 내 스스로가 내 글에 대한 야비한 평론가가 되어 있을 때, 내가 쓴 글이 도무지 글 같지 않아서 자괴감이 들 때, 나는 모닝 페이지를 또 쓰게 되리라.(2010)

 

▲ [사진=김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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