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이경노 수필산책] 사탕 한 봉지:리더스팩트
로고

[이경노 수필산책] 사탕 한 봉지

이경노 | 기사입력 2024/03/16 [09:24]

[이경노 수필산책] 사탕 한 봉지

이경노 | 입력 : 2024/03/16 [09:24]

▲ 이경노 수필가 [사진=리더스인덱스]  ©


[이경노 수필산책] 사탕 한 봉지/ 이경노

 

거리를 지나며 매장에 진열된 사탕을 보면 달콤한 느낌보다는, 먼 기억으로부터 전해지는 씁쓸함이 입안에 감돈다.

 

스무 살, 대학 1학년 때다. 친구로부터 아가씨 하나를 소개받았다. 이성을 사귀어 본적 없었고, 그 나이라면 사랑이라는 감정도 잘 알지 못 할 때였다.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해봤자, 중학교 때 교과서에 나오던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가슴속에 꿈틀 하는 것이 있어서 읽고 또 읽었던 것, 고등학교 시절 등굣길 버스정류장에서 가끔 보는 예쁜 여학생을 곁눈질로, 그것도 마음을 들키지 않을까 흘깃 바라보던 일, 어떤 잡지에서 봤던 여교사와 남학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얘기를 읽으며 묘한 감정을 느꼈을 때 빼고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실제로 누군가를 사귄다는 것은 생소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딱히 내 이상형도 아니어서 가끔만 만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매일 나를 향하여 쓴 일기, 직접 접은 종이학 천 마리와 학 알까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의 것들을 커다란 유리 상자에 넣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내 방 한 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게 되었다. 마음으로 받은 것이 아니기에 소중하지 않았고 또 그리 의미가 없었다.

 

하루는 그녀가 나에게 정성들여 포장한 초콜릿을 주었다.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이다. 영혼 없이 받아서 집에 가지고 와서 먹었지만, 막상 화이트데이가 되었는데도 그녀에게 사탕 한 봉지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나는 화이트데이 때 내 평생에 단 한 명에게만 사탕을 줄 거야.”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에게 아픔을 주었다. 원래 보수적이었던 나는, 나이 30이 넘어서까지도 나에게 사랑은 단 한 명이면 족하다. 나는 그 사람하고만 결혼할 거야.’ 라는 아주 고지식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말이 나왔으리라.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고는. 종이학을 비롯한 모든 것을 다시 돌려주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바로 주변의 포장마차에 가서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안주도 없이 몇 잔 들이켰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에게 이별을 안겨준 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진짜로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나온 행동이었을까.

 

그런 기억은 잊혀진지 오래. 10여 년이 지난 뒤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고, 실연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너무나 아팠다. 실연이란 게 그렇게 아픈 것인 줄 미처 몰랐다. 운동 광으로 매일 조깅, 등산, 마라톤, 도장에서 운동을 하던 때보다, 실연을 당하고 1개월 내에 몸무게가 더 많이 빠졌다. 사랑의 실연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것인 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야 비로소 그녀의 마음을 새삼 헤아리게 되었다. 이별의 마지막 순간 집으로 들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 아픔이 가슴에 전해졌다.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가끔 그녀가 생각날 때면 손을 모으고 미안합니다.” 하고 혼잣말을 한다. 어린 그녀의 가슴에 비수처럼 상처를 남겨준 것에 대한 사죄다.

 

잘 살고 있을까. 이미 40년이 지나 그녀는 그 기억을 잊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년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때 길가에 진열된 사탕을 보면, 코끝이 찡해져 나도 모르게 속으로 되뇌게 된다.

그깟 사탕 한 봉지가 뭐라고···.”

 
  • 도배방지 이미지

심층기획
메인사진
대기업 재고 증가 멈췄다...전년 대비 0.3%증가에 그쳐
1/3